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은 10일 오승걸 원장이 사임했다고 밝혔다. 정답 오류가 아닌 ‘난이도 실패’로 평가원장이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가원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영어 영역역 출제가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지 못해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준 책임을 통감하고 사임했다”고 전했다. 오 원장은 2023년 8월 취임해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은 절대평가 과목임에도 1등급 비율은 3.11%에 그쳤다. 이는 절대평가가 도입된 2018학년도 이후 최저치다. 상대평가 과목의 1등급 기준(상위 4%)보다도 낮은 수치로, 사실상 ‘불수능’ 수준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오 원장은 사임 직후 “가채점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며 “난이도 조절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변동성이 있다”고 출제 과정의 구조적 한계도 언급했다. 평가원은 “출제 전 과정을 전면 재검토해 수능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퇴로 ‘평가원장 잔혹사’ 논란도 다시 떠올랐다. 역대 평가원장 12명 중 9명이 출제 오류나 논란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대부분은 문항 오류나 정책 충돌 등의 논란 때문이었다. 2004학년도 국어 출제 오류부터 2022학년도 생명과학Ⅱ 논란까지, 거의 모든 사퇴가 ‘정답 오류 책임’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성격이 다르다. 정답 오류가 아닌 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만으로 최고 책임자가 자리에서 물러난 첫 사례다. 평가원 내부뿐 아니라 교육부 정책 기조, 사교육 시장 변화, 수험생 학력 격차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출제 책임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수능 출제와 검토 전 과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원인과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국무조정실 주도의 관리 체계 점검도 진행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