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PPT 만들다 졸아서 혼나요."
중학교 2학년인 김지현(가명) 양은 수행평가가 있는 주간이면 가족 모두가 '비상'이다. 발표를 위한 시각자료, 대본, 복장까지 스스로 준비하기엔 역부족. 결국 부모의 손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부모가 아이의 학습평가까지 대리하게 되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오는 2학기부터 수행평가를 '정규 수업 시간 내 실시'로 원칙화하며, 과제형·암기형 수행평가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인 학생의 사고력 향상과 수업의 연계성 강화로 방향을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반가움 속에도 “과연 수업 시간 안에서 평가가 가능하겠느냐”는 현실적 의문을 제기한다.
'과제가 아닌 수업'이라는 원칙, 왜 지금 손보는가?
수행평가는 1999년, 획일적인 지필고사를 보완하고 학생의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장의 현실은 제도의 이상과 거리가 멀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는 수행평가가 수업과 단절된 별도 과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평가 기준이 모호하거나 교사의 주관이 과도하게 개입된다는 불만이 이어져 왔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수행평가를 또 하나의 시험처럼 여기게 되었고, 학부모는 사교육을 동원하거나 자녀의 과제를 '대신'해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교육부는 이 같은 왜곡된 운영을 바로잡고자 "정규 수업시간 내에서 평가"하라는 명확한 지침을 꺼내들었다.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고, 교육 본연의 기능으로 되돌리겠다는 취지다.
학교 현장 … "취지는 공감, 현실은 걱정"
현장 교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는 “수업 안에서 수행평가를 하라는 방향은 맞지만, 수업시간만으로는 깊이 있는 평가가 어렵다”며 “오히려 시간 부족으로 형식적 평가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예체능·실기 중심 과목이나, 창작·조사 중심 과제의 경우 수업 시간 안에만 진행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로 인해 “다양성과 창의성의 축소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교사의 재량, 현장의 자율성 보장이 관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이 "제도의 본질을 되살릴 중요한 계기"라면서도, 단순히 시간만 규정하는 방식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수행평가는 애초에 수업과 평가가 하나로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다"며 “학교가 이를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교사 연수와 사례 공유, 시간 배정 유연성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는 각 학교의 평가계획을 학기 초 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나친 개입은 학교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제도 개선은 결국 ‘신뢰 기반’의 현장 권한 부여가 뒷받침될 때 실현될 수 있다.
‘평가’는 가르침의 연장선…이제는 교사와 수업을 봐야 한다
이번 정책 개선은 수행평가라는 제도의 문제를 교정하는 동시에, 교육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계기다. 평가란 학생을 줄 세우기 위한 장치가 아닌, 배움을 확장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도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수업을 통해 성장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학생. 그리고 평가를 통해 수업을 성찰하는 교사. 이번 수행평가 개선안이 그러한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2학기 현장의 실천이 그 해답을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