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오는 7월부터 중학교를 중심으로 '학교자율시간'을 본격 도입한다. 국가 교육과정 외에도 학교와 교사가 직접 새로운 과목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인공지능, 기후위기, 공간디자인, 사회참여 등 기존 교과서에 없는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 가능해지고, 학생들의 선택권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교사에게는 과목 설계와 교재 제작, 평가 방식까지 맡겨지며 또 다른 업무 부담이 쏟아지고, 학교 간 자율과목 운영 역량의 격차도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불균형과 책임 전가가 생겨날 수 있다.

과목을 창작하는 교사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운영 지원 매뉴얼이나 공동체 구성 가이드 등이 지원되지만 수업 아이디어 발굴부터 교육과정 설계, 학습자료 개발과 성취기준 설정까지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이는 자율이라기보다 방임에 가깝다. 열정 있는 일부 교사들이 앞장서더라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자율은 쉽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학교 간의 여건 차이는 자율과목의 질과 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 교육청이 일정 부분 컨설팅과 연수를 운영한다 해도, 교사 전문성과 학교 지원 여건에 따라 ‘좋은 자율과목’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자율이 교육격차를 심화시키는 구조로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 역시 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율과목이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반영되고, 진로와 어떤 연계가 되는지 명확한 안내 없이 운영된다면, 오히려 ‘선택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흥미만으로 과목을 선택했다가 실질적인 학습 효과 없이 시간만 소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존재한다.

해외에서도 교육 자율화 과정에서 유사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핀란드는 2016년부터 학교가 교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 수업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현상 기반 학습'을 제도화했지만, 초창기에는 수업의 질이 교사 역량에 따라 크게 갈리고, 형식적 프로젝트로 흐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핀란드는 교사 간 공동 설계 플랫폼을 만들고, 전국 공통의 평가 틀과 우수 수업 공유 시스템을 갖추며 제도를 안정시켰다.

이처럼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막고 자율이 의미있는 변화로 작동하게 하려면, 제도 설계와 지원체계가 중요하다. 수업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교사에게 설계와 평가까지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되어선 안 된다. 동시에 자율의 기회가 특정 학교나 특정 교사에게만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학교자율시간’은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제도다.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 취지는 충분히 의미 있다. 그렇기에 제도의 철학이 온전히 실현되려면, 그에 걸맞은 운영 구조와 지원 체계 역시 함께 따라야 한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기대하려면, 먼저 안정성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