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역사 교과서 공개, 역사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시간
보편적 정의를 가르치는 기회로 삼아야
김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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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6:36 | 최종 수정 2024.09.0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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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저런 주제로 토론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쓰러져 가는 백제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계백 장군에 관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계백은 오천의 군사로 신라의 오만 군사에 맞서려 출정하기 전, 그 아내와 자식들을 스스로 베었다. 그런 계백의 결단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냉혹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해석된다. 아내나 자식이 가장의 소유물이 아니며, 죽고 사는 문제에 개인의 선택권이 배제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그래도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도록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는 주장도 흔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좀 다른 평가가 우세했던 듯하다. 특히 조선의 유학자들 대부분은 계백 장군의 결단에 호의적이었다. 패배한 적장의 가족으로 남아 겪게 될 치욕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키려 했던 가장으로서나, 군사들 앞에 결연한 의지를 보여 네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장군으로서나, 계백은 훌륭하고 마땅한 결단을 내린 충신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인물, 동일한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가 다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유교적, 공동체적 가치가 우세하던 세상은 이제 합리적인 개인의 선택의지를 우선시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계백이 충신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는 양면적 판단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30일. 2022 새 교육과정에 맞춰 교육 당국의 검정을 통과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공개되었다. 중학교 7종, 고등학교 9종의 새 교과서들은 내년 2025학년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새 역사 교과서의 표현 방식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학계의 대립이 이어져 왔다. 이번에도 용어 선택, 서술 내용과 비중, 의도 등을 둘러싸고 예민한 설전이 오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라 아쉬움이 크다.
계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심지어 정권의 성향까지 역사 교과서 내용을 좌지우지 해왔다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교과서는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료를 균형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해야 한다. 다 담지 못해 부족하다 생각되는 의견은 추가 자료를 만들어 현장의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다. 역사 교육의 목적은 ‘보편적 정의’를 가르치는 것에 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영달만을 도모했던 일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구하고자 애쓴 사람들의 희생에는 무한한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거쳐 간 지도자들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균형있게 가르치고, 세상을 변화시킨 민중의 힘에 대해서도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맹목적인 심판이나 편가르기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역사 속에서 배우고 깨달아,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균형잡힌 세계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제 새 교과서는 확정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서로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보편적 정의를 위해 협력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무엇보다 일선에서 학생들과 대면하는 교사와 강사들의 역할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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